2013

매끈하게 새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 이전에 존재했을 삶의 흔적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재개발 지역을 찾은 나는 빈집의 잔해들에 둘러싸여 본인의 가정을 망가진 꽃밭에 비유했던 모친의 글을 떠올렸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사회라는 정체불명의 거대구조 앞에 개인의 가정이란 유리알과 다름없다. 소수를 위한 경제적 혜택과 허울뿐인 명분으로 무장한 재개발은 쫓겨난 사람들의 수탈된 삶을 은폐한다. 나는 재개발지역의 파괴된 풍경과 이에 반응하는 내 유년의 기억을 회화로 옮기기로 했다.
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 살풍경한 폐허가 갖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향해 셔터를 눌러대는 불쾌한 아이러니를 감지하면서 나는 우선 대상의 구체적 형상에서 비롯되는 감상적 정취를 제거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지난 전시의 벽화 조각들에서 보이는 비구상적 요소를 끌어왔다.
모친의 이야기를 소재로 했던 모르는 얼굴전에서, 나는 2010이 사람을 보라전의 날개 벽화를 무작위로 찢은 뒤 빈 캔버스 주변에 재배치하고 여기서 파생된 형과 색으로 작업한 4점의 회화를 전시했었다. (2012년 작가노트 참조)
이 중 3점은 모친의 모습을 어느 정도 형상화했고, 1점은 망가진 꽃밭이라는 제목으로 재개발지역의 버려진 비닐하우스 내부의 사진을 바탕으로 구조만 살리면서 심리적 풍경을 구체화한 것이었는데 이 작업이 이번 전시의 초석이 되었다. 또한, 이 방식은 주로 거시적 시점에서 불특정다수를 소재로 했던 지난 작업과 개인적 서사와의 연결성을 나타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