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폐쇄적 써클 The Closed Circle



박은하 개인전 2017.12.01-12.10

폐쇄적 써클 The Closed Circle


이번 전시의 제목은 2015년 작 <폐쇄적 써클>에서 가져왔다. 개인의 사회적인 역할이나 역사적 위치에 대해 질문했던 2014, 15년 개인전 <완전한 유물 Relics in their Integrity> 이후, 범위를 좁혀 가족 안에서 개인의 죽음이라는 소재에 집중한 지면 연작 중 하나이다. 어떤 가족적 운명에서 확실하게 벗어나지 못하는 개별적 존재들의 소규모 집단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완전한 유물’전시의 그림들은 주로 바다를 배경으로 부둣가나 해변에 버려진 여러 가지 물건들을 소재로 작업한 것이었고 <결정지을 수 없고 버릴 수도 없는>연작과 지면 연작 또한 비슷한 사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주로 마블링 패턴을 현실과의 대결구도로 사용하던 이전 작업과 달라진 부분은, 실재하는 일상적 사물들로 낯선 구도를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벽화를 밑바탕으로 사용하면서 이런 변화가 나타났고 이는 자연히 그림의 구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현실에 비현실이 침입하거나 풍요와 빈곤이 대립하는 등 주로 이분법적 대립구도로 대부분의 조형적 문제들을 풀어내곤 했지만, 근작들에서는 구체적인 이야기들에 대한 구조를 내화하면서 이전에 모색했던 문제들을 좀 더 중립적으로 표현하여 화면 안에 구축하고자 한다. 내 관심의 무게가 개인의 경험, 기억들 쪽으로 조금씩 기울어지면서 간접적이고 중간자적 구성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정지을 수 없고 버릴 수도 없는>연작과 지면 연작에서는 밤의 숲과 바다에 버려진 다양한 물건들이 도드라진다. 관광객이 버리고 간 비닐봉지와 타고 남은 장작들, 농가나 공사장에서 흙, 비료 따위를 덮었던 낡은 담요와 비닐뭉텅이, 어선에서 쓰고 버린 그물과 밧줄더미들, 바다의 부표였던 스티로폼 등 지극히 평범하고 눈에 띠지 않는 사소한 쓰레기들이다.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전혀 인상에 남지 못하는 것들이지만, 각각의 형태에는 사물들의 고유한 특질이 담겨있다. 나는 이런 형태들을 현실에서 채집하여 하나의 장면으로 연출한다. 이로 인해 사물들은 각자 외따로 떨어져 부유하는 유령들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이들을 어두운 공간으로 끌어와 각자의 자리를 지목하고 역할을 분배하여 기념비적 형상이나 비현실적 풍경으로 직조한다. 아무렇게나 우발적으로 생겨난 자연스러운 형태들을 활용하여 큰 구조를 빚는다. 이때 화면을 통합하고 재분할하는 밤의 정경도 구체적인 구성에 대한 직관적 단정을 방해하는 선행 장치가 된다.

그물, 밧줄, 스티로폼 같은 몇몇 사물들의 잦은 출연은 내가 이 형태들에 사로잡혀있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되도록 대상의 현실적인 특성을 과장하거나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생소한 형식적 조건을 만들고자 했다. 이 소재들에는 나의 기억이나 감정이 투입되기 마련이지만 이들을 조합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물을 배치하여 화면의 균형을 찾으려 한다. 주변의 일상과 장소, 기억에서 출발하여 이를 주관적으로 해석하면서도 그런 대상들이 갖는 무방비한 우연성 자체에서 조형적인 논리를 구하려는 시도 역시 같은 맥락에 기인한다. 이번 전시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비루한 소재들을 변주하여 개인과 가족의 관계가 공간 전체에 단일한 풍경처럼 펼쳐져 보이도록 구성했다박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