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3일 월요일

개인전 2017.12.01-12.10 폐쇄적 써클 The Closed Circle


박은하 개인전 2017.12.01-12.10
폐쇄적 써클 The Closed Circle
박은하

이번 전시의 제목은 2015년 작 <폐쇄적 써클>에서 가져왔다. 개인의 사회적인 역할이나 역사적 위치에 대해 질문했던 2014, 15년 개인전 <완전한 유물 Relics in their Integrity> 이후, 범위를 좁혀 가족 안에서 개인의 죽음이라는 소재에 집중한 지면 연작 중 하나이다. 어떤 가족적 운명에서 확실하게 벗어나지 못하는 개별적 존재들의 소규모 집단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완전한 유물’전시의 그림들은 주로 바다를 배경으로 부둣가나 해변에 버려진 여러 가지 물건들을 소재로 작업한 것이었고 <결정지을 수 없고 버릴 수도 없는>연작과 지면 연작 또한 비슷한 사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주로 마블링 패턴을 현실과의 대결구도로 사용하던 이전 작업과 달라진 부분은, 실재하는 일상적 사물들로 낯선 구도를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벽화를 밑바탕으로 사용하면서 이런 변화가 나타났고 이는 자연히 그림의 구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현실에 비현실이 침입하거나 풍요와 빈곤이 대립하는 등 주로 이분법적 대립구도로 대부분의 조형적 문제들을 풀어내곤 했지만, 근작들에서는 구체적인 이야기들에 대한 구조를 내화하면서 이전에 모색했던 문제들을 좀 더 중립적으로 표현하여 화면 안에 구축하고자 한다. 내 관심의 무게가 개인의 경험, 기억들 쪽으로 조금씩 기울어지면서 간접적이고 중간자적 구성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정지을 수 없고 버릴 수도 없는>연작과 지면 연작에서는 밤의 숲과 바다에 버려진 다양한 물건들이 도드라진다. 관광객이 버리고 간 비닐봉지와 타고 남은 장작들, 농가나 공사장에서 흙, 비료 따위를 덮었던 낡은 담요와 비닐뭉텅이, 어선에서 쓰고 버린 그물과 밧줄더미들, 바다의 부표였던 스티로폼 등 지극히 평범하고 눈에 띠지 않는 사소한 쓰레기들이다.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전혀 인상에 남지 못하는 것들이지만, 각각의 형태에는 사물들의 고유한 특질이 담겨있다. 나는 이런 형태들을 현실에서 채집하여 하나의 장면으로 연출한다. 이로 인해 사물들은 각자 외따로 떨어져 부유하는 유령들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이들을 어두운 공간으로 끌어와 각자의 자리를 지목하고 역할을 분배하여 기념비적 형상이나 비현실적 풍경으로 직조한다. 아무렇게나 우발적으로 생겨난 자연스러운 형태들을 활용하여 큰 구조를 빚는다. 이때 화면을 통합하고 재분할하는 밤의 정경도 구체적인 구성에 대한 직관적 단정을 방해하는 선행 장치가 된다.

그물, 밧줄, 스티로폼 같은 몇몇 사물들의 잦은 출연은 내가 이 형태들에 사로잡혀있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되도록 대상의 현실적인 특성을 과장하거나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생소한 형식적 조건을 만들고자 했다. 이 소재들에는 나의 기억이나 감정이 투입되기 마련이지만 이들을 조합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물을 배치하여 화면의 균형을 찾으려 한다. 주변의 일상과 장소, 기억에서 출발하여 이를 주관적으로 해석하면서도 그런 대상들이 갖는 무방비한 우연성 자체에서 조형적인 논리를 구하려는 시도 역시 같은 맥락에 기인한다. 이번 전시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비루한 소재들을 변주하여 개인과 가족의 관계가 공간 전체에 단일한 풍경처럼 펼쳐져 보이도록 구성했다.

2016년 5월 27일 금요일

2015

완전하다는 것은 결코 이룰 수 없는 상태, 즉 허상, 환상, 혹은 유토피아와 같다. 역사는 완전함을 추구해온 과정이며, 이 불가능성을 향한 열망을 동력으로 움직인다.
 
유물(遺物)’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선대의 인류가 후대에 남긴 물건.
2) 예전에 통용되던 제도나 이념 따위가 이미 그 효력을 잃어 쓸모가 없어졌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 유품(遺品)의 동의어.
 
<완전한 유물 Relics in their Integrity>유물은 두 번째 정의에 가깝다. 오랜 역사의 과정에서 숱한 유물들이 생겨난다. 물질의 쓰레기도 정신의 쓰레기도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완전하다. 바꿀 수 없는 과거, 고정된 시간. 변하지 않는다는 절대조건이 만들어내는 거시사의 아우라(aura)가 목적 잃은 이동의 굴레를 계속 돌려 나아간다. ‘완전함을 좇는 길에 떨궈지는 유물들과 이 유물이 갖는 자신만의 허구적 완결성’. 나는 이 굴레 속에서 버려지기를 반복하는 미시적인 이야기에 집중한다. 일상의 쓰레기들로 직조된 가상의 스펙터클한 풍경이나 은유적 인물을 통해 그 모순적 상태와 함께 큰 이야기와 작은 이야기의 연관성에 대해 드러내고자 한다

2014년

주로 현대 도시사회의 시스템과 사람들을 관찰하며 작업해오다가 최근 들어 내 개인의 서사를 대상화하기 시작했다. 모친을 형상화한 <모르는 얼굴>연작과 <망가진 꽃밭>은 재개발지역의 파괴된 풍경과 이에 반응하는 집(가정)에 대한 내 유년의 기억을 회화로 옮긴 것으로, 이 과정에서 가정과 사회의 구조적 연관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예를 들어 버려진 비닐하우스 내부구조를 바탕으로 심리적 풍경을 구체화한 작업 <하우스>, 주로 거시적 시점에서 불특정다수를 소재로 했던 지난 작업과 개인적 서사와의 상관관계를 내포한다.
 
같은 맥락에서 <망가진 바다>의 경우, 백령도 일상의 미비한 이미지들로 현존하지 않는 하나의 새로운 풍경을 재구성했는데, 이는 과거와 현재, 가정과 사회, 개인과 역사의 그물 안에서 긴밀히 뒤섞이는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분단 상황의 긴장과는 대조적이면서도 납득이 가는 백령도의 일상 풍경(촬영한 숲, , 바위, 그물, 밧줄, 철조망 따위들)을 갈라지는 바다의 유기적인 흐름으로 구겨 넣듯 배치하고 붉은 색을 주조로 하여 살과 피의 느낌을 기도했다. 바다의 물결과 흐름을 일시적으로 고정된 형태로 보여주는 사빈의 이미지를 참고로 전체적인 형태를 잡았는데, 이는 즉 지금 어지럽게 출렁이는 바다가 아니라 과거의 뚜렷한 흔적이 라는 의미를 갖는다.
현재의 장소를 구성하고 있는 구조들이 과거의 역사적 서사와 긴밀히 상통하고 있음을 하나의 조작된 허구의 기념비적 풍경으로 보여 주고자 한다.
/2014, 박은하

Often, exceedingly ordinary landscapes conceal a kind of new colony stemming from material desires that verge on dissipation. Advancing through meaningless movement, the people just hover about within the canvas, but the image isnt strange at all. This isnt because the backgrounds of the paintings are modern, but because these landscapes are no different from the whole of human history. But the hunger for purpose continues. This is the eruption of the desire to escape the system and the feeble display of human ideals that lie hidden away at the bottom, losing force.


While my previous works were mainly an observation on the social system and people of contemporary cities, my recent work are expressing symbolic forms out of specific places with historical background they have. For example, Broken Sea (2013) is about Baekryungdo the island located in the northernmost end of South Korea and in between two Koreas (South and North). Despite its geopolitical factors, there are residents living their daily life. During my last visit, I took some photos representing their circumstance such as rocks, ropes, wire mesh, fishnet, and more. On my canvas I intended bifurcate sea putting those elements in the sea separating on the canvas with red based color suggesting blood and flesh. Moving wave and fixed sand hills leads distinct trace from some past moment. It reconstructs a sight of something that doesnt exist, and raises up issues of individual and history weaved in the net of past and present.




_Protagonist of Collective Memory_183X137cm_oil on canvas_2014

"대중이 그를 반겼다는 것은, 그가 이미 집단적인 기억의 주인공이었음을 뜻한다." -신형기 <이야기된 역사>
 
이 구절은 김일성이 북한의 대중에게 어떤 식으로 신화화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이를 읽으면서 한국의 특정 정치인을 떠올렸고 신문기사에 실린 그의 사진에서 특유의 제스츄어와 패션을 보여줄 만한 실루엣을 따왔다. 웅장하게 아래 위에서 파도가 치는 배경으로, 몸체는 그물, 머리는 밧줄 뭉텅이로, 상징적 초상을 만들었다.



_ Broken Sea _ 187.5X137.5cm _ oil on canvas _ 2013

 
백령도 답사를 떠나기 전, 한국전쟁과 북한의 현재 실상 그리고 연평해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몇 편 보았고 남북한 역사에 관한 책을 한 권 읽었다. 그 후 얼마간은 전쟁이 나는 꿈에 시달렸고 일제식민지시대와 6.25를 살았던 돌아가신 조부모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기껏해야 필름이나 문서 혹은 옛 이야기들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전쟁의 조각을 찾을 수 있을 뿐이었다. 핏물이 흐르고 시체 더미가 쌓여있는 필름 속의 불과 60여 년 전 우리강산을 보며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평화라는 주제를 풀어간다는 것에 위화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결국 이 당혹스러움과 마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내게 가능한 구체적인일을 상기하며 이러 저러한 상념에 물먹은 솜과 같은 마음으로 인천을 향했다.
 
백령도는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NLL 근접지역인만큼 대피소나 군사 설비, 군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여느 서해의 섬과 같았다. 몇몇 관광명소가 있고 녹색이 짙은 산과 들, 논과 밭 사이로 드문드문 집이 보이고 작은 마을들이 군데군데 있지만 사람의 기척은 소원한 그런 섬. 주로 농수산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은 섬이 관광지화 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한다. 큰돈이 되지도 않고 되레 본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전쟁에 대한 우려보다도 NLL에서 이루어지는 중국 어선들의 불법어획으로 인한 직접적인 생계의 타격이 더욱 걱정스러운 게 현지사정이다. 버스가 한 고등학교를 지날 때 기사님 왈, 이 학교 학생들은 총을 배정받아 훈련하고 또한 반공교육을 받으므로 대학입시 때 가산점이 부여된다고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나는 한동안 그것이 어느 정도 진실이 아닌가 하는 망상에 몰두했다. 평화로운 일상과 머릿속 전쟁의 이미지는 삐걱거렸다. 나는 이른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에 관광객이 품는 기대와 유사한 종류의 비극적 환상을 백령도에 투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민간인 출입이 금지되어있는 군사지역의 철조망 앞에서, 그리고 얼마 전 일어났던 천안함 사건의 위령탑 앞에서 남북한의 대치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충격은 점점 옅어지기 마련이다. 익숙해지기 마련인 것이다.
예술이 평화를 논할 때 평화가 불가능한 조건에 대한 주제가 대부분이고 평화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한 것은 왜인가하는 물음에 평화 속에선 평화를 깨닫지 못한다는 진부한 명제가 어른거렸다. 하지만 전쟁은 분단이라는 상황으로 실재하고 생업의 바다는 NLL이라는 투명한 장막으로 넘실댄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긋기 위해 흘려진 피는 작금의 마주한 총부리와 포구들로 현존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분단 상황의 긴장과 이와는 대조적인 백령도의 일상 풍경을 하나의 캔버스에 망가진 바다라는 주제로 작업했다. 전체적으로 붉은 색을 주조로 하여 살과 피의 느낌을 기도했다. 갈라진 바다 틈새로 백령도에서 촬영한 숲, , 바위, 그물, 밧줄, 철조망 따위의 이미지들을 유기적인 흐름으로 구겨 넣듯 배치하였다. 바다의 표면은 실제 바다가 아니라 사곶해변의 사빈을 촬영한 이미지를 참고로 하였다. 두껍게 쌓인 고운 규암가루로 이루어진 사빈은 바다의 물결과 흐름을 일시적으로 고정된 형태로 보여준다. , 지금 어지럽게 출렁이는 바다가 아니라 과거의 뚜렷한 흔적이다
 
20136, 박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