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이 무성한 밤들 Furry Nights
이번 전시에서는 주로 유년의 단편적인 기억을 바탕으로 자신과 타인을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 현상들과 관계 맺는 상황들을 털이 무성한 밤들 Furry Nights 이라는 연작으로 다루고 있다. 독일의 일부 지역에서는 연중 가장 추운 묵은해와 새해 사이의 12일간 동물들의 털이 많이 자라기 때문에 ‘털이 무성한 밤들(Raunacht)’이라 부른다고 한다. 혹독한 추위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털을 풍성하게 하는 동물의 본능은 인간의 생존본능과 다르지 않다. 특히 어떤 것에도 선택권이나 결정권이 없는 영유아기를 포함한 아동기의 인간은 성인(부모)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정신적, 신체적으로 유약한 상태에서 자신을 스스로 지켜낼 방편이 거의 없기에 무의식적으로 심리적 방위기제를 작동한다. 나는 이 기제들 가운데 소위 ‘은폐기억 Screen Memory’이라 불리는 개념을 춥고 긴 겨울밤을 대비해 온몸의 털을 풍성하게 세우고 스스로를 지키는 짐승의 웅크린 시간에 비유하여 이번 작업을 설명하고자 전시의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전의 연작 결정지을 수 없고 버릴 수도 없는 에서는 밤을 배경으로 숲과 바다에 버려진 여러 물건을 소재로 활용했고, 이번 털이 무성한 밤들 에서는 파헤쳐져 바짝 마른 나무의 뿌리나 시든 꽃, 죽은 새나 거리의 개와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 2013년경부터 자주 그리던 재개발 지역의 풍경이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내가 그물과 밧줄이라는 소재에 매료되었던 것처럼, 죽은 나무뿌리나 쭈그러진 꽃이 가지는 복잡한 구조의 형태들 또한 나의 이목을 끌었다. 이는 폐허가 주는 퇴폐미와도 닮아있다. 새, 개, 혹은 물고기 따위의 동물들도 내 기억의 일부를 재현하거나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도구적 소재로써 활용하고 있다. 어떤 대상이 직관적으로 나의 관심을 끌면 바로 그림에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몇 년 동안 같은 이미지를 수없이 습관적으로 떠올리고 그 이미지가 자연스레 나의 기억이나 경험들과 연결되는 과정에서 특정한 의미를 띄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림의 소재로 등장하게 된다. 소재를 숙성시키는 시간은 형식적인 구조를 다양한 방향으로 조합해보는 반복적인 방식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2011년 개인전 안과 밤 에서부터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그림에 끌어들였다. 하지만 그간의 그림들에서 나는 밤보다는 어둠이라는 시각적 폐쇄감을 표현해왔다고 생각한다. 이는 ‘안’이라는 내부의 밀폐성을 포함하기도 한다. 각종 쓰레기로 뒤덮인 채 철거를 기다리는 빈집은 이미 그 자체로 커다란 폐기물에 불과하지만, 그 어둑하고 비릿한 공간은 여전히 일종의 온기를 품고 있다. ‘망가진 꽃밭’이라고 여겼던 가족의 풍경 속에서 마침내 빠져나오기 직전의 대상은 죽은 형상임에도 벗어나려는 의지로 생생함을 발한다. 대상을 붙잡으려는 폐허의 망가진 온기와 이를 뿌리치고 사멸을 거부하는 대상과의 줄다리기가 약한 긴장을 풍긴다.
기억의 해상도는 축적된 시간에 반비례한다. 기억을 해석하는 스펙트럼은 숙주의 나이에 정비례한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나 정황에 대해 기억하는 감정은 꽤 온전하다. 감정에 대한 생각은 바뀔 수 있지만, 감정 자체는 상흔이다. 나는 이 흔적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채집하게 되는 개인과 사회의 상관 구도를 그려내고자 한다. 감정에 몰입할수록 형태를 잃는다는 귀결에 대해서는 형식으로 감정의 재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무형한 것을 유형화하는 일은 결국 체제나 형식의 개입에서 시작한다. 이번 전시는 은폐했던 유년의 기억을 생명을 다한 동식물들과 거리의 인물들을 소재로 캔버스에 재구성하면서 실재와 허구가 뒤섞인 상징적인 개인 내부의 정황들이 공간 전체에 하나의 풍경을 이루며 중첩되도록 구성했다.